여행

길을 나서다. 움직이는 집

김길수 2024. 1. 1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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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세 서 있으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를 정하고 가는 길은 얼마나 쉬운가!

  갈 곳을 알지 못하고 나선 길세서 낯선 나를 본다.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마냥 세상을 두리번거린다.

  아내의 생각과는 달리 집은 쉽게 팔렸다. 이제 우리가 가진 집이라고는 3평짜리 작은 버스가 전부다. 80평 큰 집에서 움직이는 집으로 이사를 한다. 큰 살림살이는 들어갈 곳이 없어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꼭 필요한 물건들만 작은 집으로 옮긴다. 아내는 최소한의 조리도구와 몇 벌의 옷가지들을 챙긴다. 옷장과 주방에는 이사를 한 흔적이 남지 않을 정도로 부엌살림과 옷가지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작은 냄비 두 개, 뚝배기 하나, 밥솥 하나, 프라이팬 하나, 그릇 몇 개로 음식을 차리고, 몇 벌 안 되는 옷을 자주 빨아 입자면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우리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이렇게 단순할 수 있었구나!

  수남이, 민정이는 좋아하는 동화책 몇 권과 장난감 몇 개를 골라 새집으로 이사를 한다. 이제 제법 자기주장이 강해진 수남이는 자전거와 탈 수 있는 작은 자동차도 챙겼다. 바퀴 달린 집이 신기한 아이들은 웃음꽃이 폈다. 여행을 하면서도 목수일을 해야 하니 나는 연장을 챙긴다. 작은 집에 실을 수 없는 큰 연장은 마음 착한 형에게 나누어 줬다. 젬배와 기타도 실었다. 좀 어수선하기는 하지만 먹고 입고 자고 놀고 일하고 하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 세 평짜리 움직이는 집에 다 들어왔다. 나눠 줘야 할 옷, 책, 장난감, 살림살이들이 산더미로 남아 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 옷들을 사 모으느라 돈을 벌고 그것들을 짐으로 지고 사느라 힘들어했구나! 모두 나누어 주고 나니 움직이는 집에 가벼운 살림만 남았다. 짐으로 지고 있던 집을 팔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나누니 모든 것이 가벼워졌다.

  이제는 남겨진 살림도, 돌아올 집도 없다. 움직이는 집과 함께 바람을 따라 움직이고, 길 위에서 먹고 자고 놀고, 길에서 배움을 구하고, 길에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야한다. 누군가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는 삶, 그리운 것들을 찾아다니는 삶을 시작한다. 무언가 약족된 것도, 의지할 곳도 없는 광야를 달린다. 아내와 어린 아이 셋을 거느린 가장이 스스로 거지가 되어 출발하는 여행을 축하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심어린 걱정과 무책임하다는 비난이 여기저기서 쏟아지지만 우리는 떠난다. 아내는 미래에 대한 약간의 걱정을 안고, 아이들은 동화 속 주인공이 되고, 아빠는 어릴 적 꿈을 찾아 움직이는 집과 함께 출발이다.

  움직이는 집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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